작성일 : 09-02-1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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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수원여성회 (218.♡.100.109)
 조회 :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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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과 시민의 경계
용산철거민 희생사건을 바라보자니 20여년 전 대학시절이 떠오른다.
총학생회가 주관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가서 농민가를 배우고, 학교가 주관하는 채플시간에 민중가요를 부를 만큼 학내 곳곳 민주화운동 분위기가 자연스럽던 그때, 난 항상 겁이 많고 무서웠다. 과 동아리 선배들과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알게 되었지만 아직 나에겐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았고 뚜렷한 신념도 없이 사회를 바꾸자고 행동에 나서는 것에 쉽게 나서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신중하고 겁 많던 1학년의 내가 누구의 이끌림이나 선배의 제안과는 관계없이 집회현장에 참여하여 구호를 외치던 그 날이 떠오른다. 학교 앞으로 늘어선 작은 복사집이며,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낡은 구옥을 개조하며 이 방 저 방 학생이 들어차는 식당이 있던 학교 앞 동네가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철거가 시작되던 그 날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교문을 나서던 난, 여기저기 난폭하게 끌어내어져 던져진 집기며, 이를 말리는 주민들과 여기저기 힘없이 부서지는 기와와 낡은 집들 사이로 큰 덩치의 험악한 철거반을 발견하였다. 그 날 처음 철거깡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폭력적인 철거가 서울시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에서 읽었던 사회 인식과 무관하게 그 시간 내가 느끼고 체험한 철거반원의 폭력성과 야만성에 침묵하거나 방관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내가 찾던 그 공간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는 것에 화가 났고, 내가 알던 그 분들이 울부짖는 것에 속이 상했고, 폭력반원들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분노가 일었다. 난 그 현장을 떠날 수 없었고, 난생 처음 집회에 참여하여 학교수업을 가지 않았다.
그 순간 난 어떤 목적을 가진 운동권 학생도 아니었고, 철거민도 아니었고, 그들을 지원하는 어떤 조직의 일원도 아니었지만 철거반원들의 폭력을 막아야 했고, 이를 막기 위해 나라도 힘을 보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운동권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철거가 마무리되고 들어선 높은 아파트에서는 그 정겹던 집들과 할아버지 할머니를 다시 만날 수 없었고 신입생이던 나의 추억이 담긴 그 공간은 사라져 버려서 재개발이 가져다주는 혜택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이젠 너무도 아련하여 기억 속에만 머물러야 할 그 시대의 철거가 지금도 뉴타운,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에서, 수원에서,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그때보다 더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언론까지 합세하여 주민들을 폭도로 매도하고 몰아세운다. 철거민대책위 간부들이 처음부터 대책위 간부가 되었을까. 철거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집과 터전을 잃고 빼앗기면서 나처럼 화가 나고 분노하면서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강인해지고 서로 돕고 연대하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난 운동권인가? 아님 일상을 사는 평범한 시민인가? 물론 난 후자가 좋다. 길거리로 나가 목소리를 높이고 분노를 표출하기보다 일상의 삶을 만들고 즐기는 시민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러나 일상의 평화를 바라는 바람과는 다르게 누군가의 삶과 일상이 하찮게 다뤄지고 폭력에 의해 빼앗기는 것을 볼 때 나의 몸과 감성은 그때처럼 분노하고 뜨거워지게 될 것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용산철거민과 희생자들은 나와 같은 몸과 감성을 가진 우리 이웃일 것이다.
임혜경/수원여성회 공동대표
게재일 : 2009.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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